『남부군・南部軍』(日本語訳付き)

『남부군・南部軍』(日本語訳付き)

北韓으로 간 在日僑胞 및 그 配偶者 93,000여명의 삶은 透明人間의 그것이다. 보이지도 않았고
記錄에도 남아 있지 못했다. 北韓은 물론 南韓도 日本에도 그들 삶의 記錄은 存在하지 않는다.
在日僑胞 歸國者들만 그런 것이 아니다. 남쪽에도 북과 남으로부터 버려진 存在들이 있었다.
本人들의 정식 명칭은 “南部軍” 남측 討伐隊에서 부른 名稱은 “李鉉相 部隊” 혹은 “智異山 共匪”,
“빨치산” 등이었다. 南部軍은 누구인가? 1948년도 麗水-順天 反亂事件 (濟州 4.3 事態 鎭壓 命令
을 받은 國軍 第14 聯隊를 中心으로 上部命令 拒否하고 反亂을 일으킴)으로 南韓政府에 대항하는
무장병력이 지리산을 중심으로 빨치산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지속적인 남쪽의 토벌작전으로
대부분 전멸하고 일부만 살아남았다. 그 일부 빨치산 세력과 조선전쟁 중 인천상륙 작전으로
퇴로가 끊겨 남쪽 깊숙히 남았다가 북으로 돌아가지 못한 인민군 정규군, 그리고 여러가지
명목으로 정규군과 행동을 같이한 정치지도원, 신문기자, 후방지원 인력 등이 합류했다. 그들은
지리산을 중심으로 유격 무력 항쟁을 다시 시작했다. 그 지도자가 남조선 노동당 (남로당) 의
실력자, 李承燁 (리승엽)의 오른팔이었던 이현상이다. 이현상은 탁월한 지도력으로 상당기간
완강한 저항을 성공적으로 지속했다. 하지만, 후방 보급 없이 자체 물자 조달 하면서 전투를
지속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설상가상 1951년부터 전선이 교착 상태에 빠지고
휴전 협정 교섭이 지루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전투는 휴전선을 따라 산발적으로 이어졌으나
남이나 북이나 더 이상 대규모 전쟁은 원하지 않는 상태였다. 따라서 남쪽에 남은 남부군은
필사적으로 북으로 탈출하는 것 외는 방법이 없었다. 남부군은 정식으로 북한 정부의 정규군
일부였다. 따라서 모든 행동 방침은 상부지시에 따라야 했다. 문제는 고립된 상태에서 연락
방법이 인편으로 오가는 통지문 밖에 없었다. 지리산에서 출발한 문서가 북으로 가서 다시
지시명령서가 돌아오는데 길게는 8개월도 걸렸다. 상황이 더욱 악화된 것은 1952년도에 북한
내부에서 권력 투쟁이 벌어져 전쟁 패배의 책임을 물어 朴憲永 (남로당 우두머리)부수상을
비롯해 이현상의 직속 상관이던 이승엽 등이 전부 숙청 총살 당했다. 이현상의 남부군은 이런
사정도 모른 채 북한정부에 퇴각 명령을 요청하고 북상을 꾀했다. 하지만 돌아 온 명령은 전선을
사수하고 현지에서 영웅적 투쟁을 전개하라는 것이었다. 매일 굶주림에 죽고, 병으로 쓰러지고
남측 토벌대에 의해 죽어 나가는 판에 계속 항쟁을 명령한 것은 그냥 그곳에서 죽으란 말과
같았다. 결국 이현상은 북으로 떠나기로 하고 남는 자는 민간으로 돌아갈 것을 명했다. 하지만 그
당시 한국은 근대화 전으로 농촌 지역 어디든 씨족 마을 형태였다. 마을에 돌아가면 빨치산
활동을 한 것을 다 아는 처지이기 때문에 살아남기 힘들었다. 결국 오도가도 못하는 상태에서
1953년 지리산 어느 골짜기에서 이현상은 살해 당하고, 살아남은 자들은 항복하고 만다. 투항한
사람들은 일정기간 투옥 생활 후, 남한 사회에 복귀해 살아 남았다. 끝까지 공산주의를 포기하지
않고 북한을 조국이라 생각한 사람들은 장기수로 남아 일생을 감옥에서 보냈다. 김영삼 정부는
장기수들을 북으로 보냈다. 그들은 북한 김일성으로부터 영웅칭호도 받고 사후 애국 열사릉에
묻혔다.
기가 막힌 일은 1953년 휴전 협정 막바지에 북한은 남부군을 정규군으로 인정해 포로로서 북송을
요구하지도 않았고 남쪽은 산에 있는 귀찮은 적대 세력인 남부군을 북한에게 데려가라고
요청했지만 북은 일절 응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아! 이데올로기란 무엇이며 조국은 무엇이고, 역사 속의 개인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격동의
한반도에서 70여 년 전 남과 북으로부터 처절히 버림받은 영혼들의 명복을 빈다
이태의 자전적 소설 “남부군”이 나온 것은 1988년. 이전까지의 반공 일변 정권하에서는 불가능한
책이 노태우 집권 초 유화 분위기 속에서 이런 류의 책으로 처음 출판 되었다.

 

実際にパルチザンとして活動した従軍記者イ・テの自伝的小説

 

이후 1990년정지영 감독이 영화화 해서 크게 성공했다 . 일본의 “役所 広司” 같은 이미지의 안성기가 주연했고
다행히도 유튜브에 무료 공개판이 있어 소개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qxiur5Y6JAg&t=4089s
영어 자막은 있으나 불행히도 한국어, 일본어 자막은 없다. 누군가 작업을 해서 올려주면 보다
많은 이들이 볼 수 있겠다.
피어린 피앗골 골짜기에서 분홍 진달래로 허기를 달래려는 남부군. 그 험한 지리산 정상
부근도이제는 관광버스로 30분이면 오른다.

『南部軍 愛と幻想のパルチザン』監督チョン・ジヨンより(2014 日本公開)

 

진달래 피는 봄이 오면 그들의 슬픈 노래 소리를
들으러 지리산에 한번 가봐야겠다. (글 P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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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語訳)

北朝鮮に渡った在日朝鮮人とその配偶者約93,000名の生は透明人間のようである。見えることなくまたほとんど記録にも残せていない。北朝鮮はもちろん、韓国と日本にもその生の記録は存在しないようである。それは在日朝鮮人帰国者だけでなく、過去に「南」からも「北」からも捨てられた人々がいた。

その人たちの正式名は「南部軍」といい、韓国の討伐隊が呼んだ名称は「李鉉相部隊」あるいは「智異山共匪」とか「パルチザン」であった。

「南部軍」は誰なのか? 1948年の麗水-順天反乱事件(済州4.3事態の鎮圧命令を受けた国軍第14連隊を中心に上部命令を拒否して、反乱を起こす)で韓国政府に対抗する武装兵力が智異山を中心にパルチザン活動を始めた。しかし、持続的な韓国政府の討伐作戦により、ほぼ全滅し一部だけが生き残った。その一部パルチザン勢力と朝鮮戦争中の米軍仁川上陸作戦により退路を断たれ、北に帰還できなかった人民軍正規軍、そして様々な名目で正規軍と行動を共にした政治指導員、新聞記者、後方支援人力等が合流した

彼らは智異山を中心に遊撃武力抗争を再開した。その指導者が「南朝鮮労働党(南労党)」の実力者、李承燁の右腕であった李鉉相だった。李鉉相は卓越した指導力で相当期間頑強な抵抗を成功的に持続した。しかしながら、後方支援なく自力で物資調達をしながら戦闘を持続することは当初から不可能なことでもあった。さらに1951年から戦線が膠着状態に陥り、休戦協定交渉がだらだらと続いてしまった。

戦闘は休戦ラインに沿って散発的に繰り返されたが、南北ともにこれ以上大規模な戦闘は望まない状況であった。

従って、南側に残った「南部軍」は必死になって北側に脱出するしかなかった。「南部軍」は正式な北朝鮮の正規軍の一部であったため、すべての行動や方針は上部の指示に従わ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問題は孤立した状態で連絡方法が人の手を介した通知文しかなかったのである。

智異山を出発した文書が北に行き、そしてまた指示命令書が戻ってくるまで長くて8か月はかかる有様であった。状況が悪化したのは1952年に北朝鮮内部にて権力闘争が繰り広げられ戦争敗北の責任を朴憲永(「南労党」トップ)副首相を始めとする李鉉相の直属上官であった李承燁たちがことごとく粛清・銃殺されたことである。李鉉相の「南部軍」は高尾幼な事情を知らないまま、北朝鮮政府に退却命令を要請して北上を試みた。しかしながら、出された命令は戦線を死守して現地にて英雄的闘争を展開しろというものであった。毎日餓死者が出て病に倒れるだけでなく、討伐隊により殺されている状況下で徹底抗戦を命令したことはその場で犬死しろということであった。

結局、李鉉相は北に向け出発し、残った者は民間人に戻ることを命じた。しかしながら当時の韓国は近代化前で農村地域はどこも同族の村社会であった。帰郷してもパルチザン活動をしていたことは周知の事実であるので、そこでも生き残ることは困難であった。結局行くことも戻ることもままならない状況に追いやられ、1953年に智異山のある谷で李鉉相は殺害され、生き残った者は降伏してしまうのである。

投降した人々は一定期間の投獄生活後、韓国社会に復帰して生き延びたが、最後まで共産主義を放棄せず、北朝鮮を祖国と信じていた人々は非転向長期囚として残りの人生を監獄で送ることになった。

金泳三政府はこのような非転向長期囚を北朝鮮に送り、彼らは北朝鮮で「英雄称号」を授与され死後は「愛国烈士陵」に祀られた。

驚くべきことは1953年の休戦協定交渉の最中、北朝鮮は「南部軍」正規軍として認め、捕虜として北朝鮮への送還を要求することもなかった。韓国側はパルチザン活動を続けていた敵対勢力でもある「南部軍」を北朝鮮に連れて行けと要求したが、北朝鮮側は一切これに応じなかったという事実である。

イデオロギーとは何であり、祖国とは何なのか!そして歴史の中の個人とはどういう存在であるのだろうか?激動の70年前の朝鮮半島において南と北から捨てられた霊魂の冥福を祈る。

この時の自伝的小説「南部軍」が出版されたのが1988年、それまでの反共一辺倒の政権下ではその出版など不可能であっただろうが、ノ・テウ政権時の南北融和ムードのなかでこのような種類の本が出版できることになった。その後、1990年にチョン・チヨン監督が映画化して大成功したのである。日本の役所広司のようなイメージを持った韓国の国民的俳優アン・ソンギが主演した。

 

実際にパルチザンとして活動した従軍記者イ・テの自伝的小説

 

幸いにもユーチューブに無料公開版がアップされているので紹介する。英語字幕はあるが残念ながら韓国語・日本語字幕はない。(原文参照)

血の滲んだ智異山ピアッコルの谷間でピンクのチンダルレで空腹を一時でも忘れようとする「南部軍」、その険しい智異山頂上付近も今は観光バスだと30分ほどで上がることができる。

 

『南部軍 愛と幻想のパルチザン』監督チョン・ジヨンより(2014 日本公開)

 

チンダルレが咲き誇る春が来れば、彼らの悲しい歌声を聞きに、智異山に一度行かねばならない。

(日本語訳 P)